[제프가 만난 사람 1]푸치니, 네순 도르마

#제국의 꿈 그토록 찜통 같았던 워싱턴 여름도 한풀 꺾인 듯한 그래서인지 유난히도 맑은 아침햇살을 받으며 상아빛을 발하는 국회 의사당 옆을 끼고 돌았다. 8월 31일은 먼 훗날, 역사에 한휫을 그은 날로 기억될 것이다. 건국이래 가장 긴 전쟁을 마무리 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기쁨의 함성도 축하의 폭죽도 없다. 현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국회는 휴게(recess) 상황이라서 국회의원들은 모두 DC를 떠난 상태다. 젊은 비서관들만이 총총 걸음으로 Rayburn과 Cannon빌딩으로 발길을 재촉하지만, 근처 Lincoln Park에는 일해야 하는 주중 화요일 아침 시간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조깅을 하거나 한가히 잔디밭에 누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다. 그렇다 이 수도 어디에도 데모하는 함성은 없고, 그 누구도 관심 밖으로 보이는 이 상황이 오히려 생소하다. 수많은 젊은 전사자와 천문학적인 국방비를 투자했건만, 무엇 하나 보여줄 것도 없다. 말이 좋아 철수(pull out)작전이지, 어디로 보나 미국의 패전이다. 베트남 전쟁 이후 계속 민망한 모양새만 보여주고 있는 형태가 안타깝다. 이라크만 하더라도 최소한 적에게 함락 당하지는 않은 상태에서 철군했지만 미국인이라면 모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탈레반에게 구걸하듯이 철수하는 미군들 모습과 74년 사이공에서 마지막 헬기를 타려고 매달리던 월남인들의 애절했던 얼굴들이 겹치며 미군으로 근무했던 한 베테랑으로서 찹찹한 마음이 들었다. 제국의 꿈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허탈함 뿐이라면 왜 그토록 애써 머나먼 땅에 공을 들였을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온종일 워싱턴 수도 한복판을 휘젓고 다녔다. #이념의 늪 “물러가라 밤이여 사라져라 별들이여” 폭도들에게 능욕당했던 국회의사당은 반년을 철책으로 에워싸있어 국민을 대변하는 장소보다는 마치 숨어 숨쉬는 벙커와도 같은 인상을 주었고 그 우악스러워 보이던 철책들이 아프가니스탄 철수와 맞물려 모두 철거되었다. 국회도서관 앞에 서서 차를 기다리는 공화당 의원 케빈 멕카티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공화당 의원 서열 1위임에도 별 호위없이 한 시민과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철군에 관하여 한마디 건네고 싶었지만, 도저히 내 차례가 올 것 같지 않아 비서관에게 물어보았다. “국회의원들 모두 지역구로 내려갔다는데 어떻게 멕카티씨는 여기 있나요?” 돌아온 대답이 너무나 정치색 짙었다. “그는 지도자입니다. 자리를 지켜야죠” #Vincero! Vincero! 차로 돌아와 라디오를 켜니 푸치니 오페라의 백미이며 테너 가수의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투란도트>의 “아무도 잠들지 말라”가 내 차 안 가득히 흘러 넘친다. 성조기에 에워싸여 도버 공군기지로 이송 되어온 해병대원들의 유해관을 향해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다. “잠들지 마라” 그리고 아리아 끝부분이 내 심장을 후려친다. “Vincero! Vincero! (이길 것이다! 이길 것이다!)” 그러나 이기지 못하고 지고 말았다. 정치와 이념의 늪에 빠져 허우적 거린 20년 세월이 아침 햇살 아래 별빛 사라지듯 사라졌다. 한국 전쟁이 종지부를 찍은 후 어느 사람이 말했다. “잃은 것은 모든 것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ideology)” 그렇다, 20년 전쟁 후 얻은 것은 천문학적 빚더미와 미국의 추락한 위상 그리고 더욱 깊어진 이념의 늪 뿐이다. #변해버린 보수와 진보 진영의 지렛대 20년 전쟁을 하루아침에 종지부 찍은 연유는 보수와 진보 진영의 변화에도 연유한다. Koch Brothers하면 보수들의 돈줄인 동시에 보수 이념의 풍향계다. 그 코크 형제들이 완전히 변했다. Neo Con(신보수)가 아닌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로 작은 정부와 전쟁 금지의 피치를 들고 나섰다. 전 같았으면 보수 공화당들이 이렇게 조용할 수가 없다. 왠 기회인가하고 바이든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며 백악관 앞 펜실베니아 애뷰니를 장악해야 애기가 된다. 해병대원들의 유해관을 앞세워 엄청난 저항이 있었어야 하지만 보수나 진보 논객들 모두 톤이 사뭇 다르다. 미국 우월주의, 미국 이상주의에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로 돌아서서 자신에게 주력하는 모습이다. 이전의 미국의 우선주의가 국제사회에 통보하는 독단적 모습이었다면 이번의 변화된 모습은 내부 즉, 국내의 변화와 발전을 도모하자는 것이 그 골자다. 바이든 대통령의 미 재건축 프로젝트 역시 아프가니스탄 철수와 맞물려 이루어지고 있는 주요 정책의 일환인 것이다. #약속의 땅(Promised La nd) 건국이래 미국의 이념과 민주주의 이상향을 외지에서 실현시킨 국가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비록 반쪽의 성공이긴 했으나, 미국이 동맹으로 개입한 전쟁에서 대한민국 같은 찬란한 민주주의 그리고 경제발전을 이룩한 나라는 지구상 그 어디에도 없다. 미국의 꿈은 대한민국과 같은 국가를 중동(아프가니스탄)에서 또 한번 창출해보고 싶은 것이었다. 한국만이 미국이 실현한 약속의 땅이었고, 그 액즙의 달콤한 맛을 또 한번 맛보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 꿈은 천 번의 칼질에 의해 쓰러지고 말았다. CNN 인터뷰에서 예비역 중장 루트(Lute)는 이번 전쟁의 패착을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은 이번 전쟁에서 한번의 20년 전쟁이 아니라 20번의 1년 전쟁을 했다” 따라서 국민 그리고 정치인 모두 전쟁에 식상하고 피곤한 상태였다. 단지 바이든 대통령이 그 악연의 끈을 자르는 악역을 실현했을 뿐이다. #커피와 술 얻어 마시던 친구 저녁 노을이 내려앉기 전 대사관들이 즐비한 Embassy Row로 향했다. 조지타운 동창과 회포를 푸는 저녁 약속이 있었다. 서지오(Sergio)는 나와 정반대로 무척 조용히 말하며 색채를 드러내지는 않지만 엄청 톡톡한 친구다. 같은반에 다닐 무렵 나와 서지오 그리고 Kim(해병대 소령으로 예편하고 복학한 미국친구) 세명은 휴식 10분 동안 거리가 먼 스타벅까지 뛰어가서 커피를 사서 교실로 급히 돌아오면 항상 크라스는 이미 시작됐고 교수님은 늘 불편한 표정이었다. 같은 전공의 우리들은 커피와 술을 달고 살았다. 긴 수업이 끝나면 우리는 The Tombs 지하 식당으로 내려가 생맥주를 들이키며 하루를 돌아보고는 했는데, 나보다 한참 나이가 어린 그리고 나보다 한참 신선하고 청렴한 볼리비아 학생 서지오와 커피와 술값을 더치페이할 수는 없었다. 그때마다 눈을 아래로 내리며 조용히 “Thank you” 하며 맥주잔을 들이키던 서지오... #한 외교관의 소박한 의견 그리고는 졸업과 동시에 홀연히 볼리비아로 귀국해 버렸다. 그랬던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워싱턴 대사관 영사로 임명되어 돌아왔다는 것이다. 우리 둘은 Connecticut Ave 선상 카페에 자리잡고 그동안의 회포를 풀면서 또다시 생맥주를 들이켰다. A-1 외교관 비자, 그것도 영사관 서열 2로 돌아온 서지오에게 대단하다고 칭찬하니 본국에서 자신에게 LA나 DC 둘 중 한군데 선택권을 주었는데 “No brainer(생각할 것 없지)” 하며 나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새로 임명되어 오니 신참으로 임무가 ‘빡세냐’고 물으니 웃으며 외교관 일 너무 쉽다며 웃는다. 가장 힘든 것은 총영사가 오후 3시 출근해서 저녁 7:30 되어야 퇴근하는데 모든 직원들은 오전 9시 출근해서 오후 5시 이후에는 계속 눈치 보면서 퇴근도 못하고 그 총영사는 토요일에도 출근을 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는 맥주를 크게 들이키며 취임인사에서 ‘조지타운’ 졸업했다는 말을 하지 말아야했는데 오피스 내에서 그가 어떤 ‘금수저’ 이기에 조지타운 유학 오고 젊은 나이에 서열 2로 취임해 오냐며 벌써 소문이 퍼졌단다. 그러나 그 누구도 얼마나 자신이 노력한지 모른다며 긴 한숨을 내쉰다. 어디나 ‘오피스 팔리틱’은 있으니 잘 하라며 등을 쳐주었다. #이란-북한-볼리비아 대화가 아프가니스탄 철군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볼리비아가 이란, 북한 등 미국과 상당히 까칠한 상대들과 가까운 우방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현 정권이 진보이며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좌파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란은 석유, 북한은 핵이라도 있지만 볼리비아는 가진 것이 별로 없어서 미국은 별 신경 안쓰는데 세 나라 모두 자꾸 떼거지 쓴다며 웃는다. 미 철군으로 가장 골머리 아프게 생긴 나라는 사실 이란이다. 이미 오랜 전쟁으로 250만명의 아프가니스탄 피난민들이 이란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또다시 쓰나미와 같은 피난민들이 밀려올 판국이다. 중국 역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상황에서 신장 무슬림 문제가 또다른 화약고로 폭파 일촉즉발 상황이다. 그러고 보니 미국은 골치 아픈 혹은 뺀 상황 그리고 그 혹이 이제 어디로 가서 붙을까 궁금해진다. “아~ 코리아. 미국과 함께 이룩한 유일한 오아시스, 지상의 유토피아!” 내가 한 말이 아니다. 마지막 술잔을 비우며 내 친구 서지오가 한 찬사다. 둘이 어깨동무하며 나선 선술집 앞에 종전의 의미에서인가 초가을 신선한 바람이 불었다. ▷문의: Jahn20@yahoo.com

09/10/2021 | 12:00: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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