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눈 높아지면서 번역의 질도 진화 독자의 취향에 따라 번역 텍스트를 선택하는 시대가 됐다. 1960~70년대만 해도 일어 번역본을 중역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공부한 학자·번역가들은 일본어가 더 익숙했고, 원전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 1987년 대한민국이 국제저작권조약에 가입하면서 저작권 협약을 맺고 외국책을 번역해 출판하는 시대가 열렸다. 해적판이 급감한 것이다. 90년대 중·후반에는 해외 유학파들이 번역에 뛰어들었다. 자연스럽게 분야가 다양해지고 번역의 질이 높아졌다. 웬만한 고전은 이때 한 차례씩 번역돼 나왔다. 눈이 높아진 독자들은 중역을 용납하지 않았고, 이를 바탕으로 2000년대 후반부터 국내 출판사들이 앞다퉈 세계문학 전집 시리즈를 냈다. 출판평론가 표정훈 한양대 교수(기초융합교육원)는 "이제 우리나라의 번역은 세계문학 전집에 구멍처럼 빠져 있던 난해한 작품들을 원전을 제대로 번역해 내놓는 수준으로 올라섰다"고 말했다. "'번역이 맞는다 틀리다의 시대'에서 '번역자 스타일에 따라 번역은 달라질 수 있고, 작품도 풍성한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세대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의 스타일이 달라지면, 번역도 당연히 달라진다. 독자는 이제 여러 가지 번역본 앞에서 행복한 고민 중이다. 한형곤 교수는 번역자를 '교통순경'에 비유했다. "번역자가 원작의 뜻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독자가 수용하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말하자면 신호를 잘 보내고, 그 신호를 잘 따르도록 조정하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