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이 되는 건 쉬워요. 하지만 많은 감독이 '어떻게 만들까'가 아니라 '무엇을 얘기할 것인가'에서 막히는 순간을 맞습니다.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지, 자기만의 필터가 없는 사람은 한계에 부딪힙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할 얘기가 많아요. 어릴 때 읽었던 '소년소녀 세계명작전집'이 제 무기입니다." 24일 서울 연세대 백양관 대강당.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을 만든 민규동(42, 사진) 감독의 말에 청중 400여명이 눈을 반짝거렸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사장 이성준)과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리더스 콘서트의 하반기 다섯 번째 강연자로 나선 그는 "초등학교 내내 30권짜리 그 전집을 책이 닳도록 읽었다"며 "어릴 땐 뭔지도 모르고 읽었던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더라. 그 에너지가 지금 내 영화의 힘"이라고 했다. 민 감독은 '나는야 활자세대 영화감독'이란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대학 시절에 대해선 "요즘이야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보편화됐지만, 우리 때는 공중전화와 게시판이 창구였다. 모임 공지를 학교 앞 서점 게시판에 붙여놨기 때문에 서점이 우리의 아지트였다"며 "좋아하는 친구들한테는 편지를 엄청나게 썼고, 시집이 생일선물의 기본 아이템이었다"고 했다. "대학 때 자취방이 정말 작았는데 제일 큰 면적을 차지하는 게 책장이었습니다.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저자인 정혜윤 CBS PD가 대학 친구예요. 그 친구도 저처럼 고전 읽기를 좋아해서 매주 한 권씩 책 읽기 배틀을 벌인 적도 있었죠." 그는 "고전이라는 건 옛날 책이라는 뜻이 아니라 옛날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읽히는 생명력 강한 책이라는 뜻"이라며 '고전 읽기'를 강조했다. "지금 여러분이 옳다고 믿는 게 100년 후에 보면 우스꽝스러울 수 있어요. 우리가 믿는 게 절대적이지 않다는 걸 깨달으려면 많이 읽고 보고 들어야 합니다."